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리 퀴리 (문단 편집) == 기타 == * 남편 [[피에르 퀴리]]도 충분히 역사에 남을 훌륭한 과학자다. 결정학, 전자기학, 방사선 연구의 선구자이며 특히 형 자크 퀴리와 함께 압전효과를 발견한 공로가 있다. [[쿼츠 시계]] 및 고주파수가 필요한 전자회로, 기타의 픽업,[* 일렉트릭 기타의 픽업이 아니라 일렉트릭 어쿠스틱 기타에 사용되는 [[픽업(장치)#s-3|피에조 픽업]]이다. 일렉트릭 기타의 픽업은 [[마이클 패러데이]]가 발견한 전자기유도현상을 이용한 것이다.] [[라이터]]와 [[가스 버너]]의 점화부, 초기형 [[점화 플러그]] 등 응용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무엇보다 공부를 [[독학]]으로 했음에도 노벨상을 받을 정도의 업적을 남겼다는 점에서 분명 탁월한 과학자다. 아내가 워낙 유명해서라기보다는 그저 불의의 사고로 너무 일찍 죽은 것이 아쉬운 점으로, 오래 살았다면 부부가 함께 이름을 날렸을지 모른다. 만에 하나 피에르 퀴리가 마리의 능력 및 성과를 조금이라도 덜 인정해줬다면, 오히려 마리가 '과학자 피에르 퀴리의 아내' 만으로 묻혔을 수도 있다.[* 두 사람의 노벨상 공동 수상도 당초 피에르의 단독 수상으로 예정되었지만, 피에르의 간곡한 요청으로 마리도 공동 수상을 했던 것이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명성을 얻은 후에도 자신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은 유일한 인물"이라는 찬사를 바쳤다. * 마리는 [[의사]]들을 싫어했는데, 이는 의사들이 죄다 진료를 하고도 진료비도 안 받아가는 사람들이어서였다. 그런 의사들이 마리에게 진료비를 받지 않은 이유는, 마리가 [[조너스 소크|라듐 관련 기술을 무료로 공개했기 때문이다.]] 라듐의 [[방사선]]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환자의 체내에 박힌 파편을 찾을 수 있게 하여 수많은 생명을 살렸는데, 이 기술로 특허만 냈다면 엄청난 돈을 긁어모을 수 있었겠지만 마리는 [[대의]]를 위해 이를 포기했다. 그렇기에 의사들은 마리에게 진료비를 챙기지 않았다. 덤으로 [[시아버지]]가 유명한 의사이기도 했는데, 마리가 의학 아카데미에 비교 후보 없이 가입된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 [[노벨상]]을 탄 후, 마리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 수훈자로 결정되지만 그것을 사양했다. 그래서인지 [[제1차 세계대전]] 때 수많은 부상병을 구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정부는 훈장을 주지 않았다. 에브가 쓴 어머니의 전기에서는 "(부상병을 구한 공로로) 훈장을 주었다면 어머니는 그것을 받았을 것"이라는 언급이 있다. 나중에 마리 퀴리가 미국에 라듐을 받으러 간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프랑스 정부는 다급하게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하려고 했지만 사양했다. 다행히 이렌과 에브([[UNICEF]] 활동 덕분에) 는 둘 다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고, 손자인 피에르도 광합성 연구에 대한 공로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 랑주뱅과의 스캔들을 보도하면서 마리를 비난했던 신문들이 나중에 마리에게 붙여준 수식어는 "우리 민족의 가장 순수한 대표자"였다. * 사후 61년이 지난 [[1995년]] [[4월 20일]],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프랑스 [[팡테옹]]에 남편과 같이 이장되었다. 이 이장식에는 마리의 딸인 에브와 손자 손녀들, 그리고 프랑스 대통령 [[프랑수아 미테랑]]과 폴란드 대통령 [[레흐 바웬사]]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참석했다. 방사능 원소를 연구하느라 백혈병으로 만 58세에 죽은 이렌과 달리, 에브는 당시 아직 생존했기에 이 자리에 참석할 수 있었다. 마리는 유명인의 아내로서가 아닌, 자신의 업적으로 팡테옹에 묻힌 최초의 여성이다. [[파일:external/6bisruedemessine.files.wordpress.com/pantheonmc1838.jpg]] [[파일:external/querencia.smugmug.com/637938598_ymKGe-L.jpg|width=500]] * 이장식 이후의 여론조사에서는 가장 위대한 [[프랑스인]] 4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여성 중에서는 단독 1위. * 마리의 유품은 90년대에 박물관에 기증되었는데, 이때 이렌의 딸인 엘렌은 "이거, [[방사능]]을 띠고 있어요."라고 말했고, 곧바로 대소동이 벌어졌다고 한다. 엘렌의 증언에 따르면, 그 말을 듣는 순간 박물관 직원들의 표정이 싹 변했다고. 직원들은 곧바로 비닐로 유품을 덮는, 실로 적절하지 못한 대응을 했지만 곧 전문가를 불러 제대로 된 처리 작업을 했다고 한다. * [[2011년]] [[11월 7일]], [[구글]]의 메인화면에 마리 퀴리 탄생 144주년을 기념하는 [[구글 두들]]이 올라왔다. [[파일:external/ae80e0cc91f4cfec28567052ebd2d9a555ed28b45f0a69c33d8607133cf9e822.jpg]] * 파리 대학교 중 [[파리 제6대학교]]는 마리 퀴리와 남편 피에르 퀴리의 이름을 따서 "피에르·마리 퀴리 대학교(Université Pierre-et-Marie-Curie)"로 불린다. 이름처럼 [[과학]]과 [[의학]]에 특화된 대학교이다. * 마리 퀴리가 연구했던 연구소는 라듐을 비롯한 방사능 물질 연구 탓에 오랫동안 방사능에 노출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닫혀있고 프랑스 정부의 엄격한 관리가 이뤄지고 있다.[[https://n.news.naver.com/article/008/0004271150|#]] * [[원소]] 중 하나인 [[퀴륨]]은 퀴리 부부를 기려 지은 원소명이다. [[분류:마리 퀴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